퇴사와 삶에 관하여

백수는 무엇을 꿈꾸며 사는가

Hi Sophia 2020. 1. 17. 11:44

2019년 4월,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던지면서 나는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next 직함이나 신분을 갖기 전까지의 이 시기를 '백수'라 쓰고 '내 인생의 황금기'라 읽겠다.

퇴사 직후 나는 어느 곳으로도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미친듯이 놀아재끼지도 않았다. 내가 혼자 남겨지면 진정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저 행복했다.

그것은 바로 삶에 관한 살아있는 공부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것, 죽기 전에는 반드시 알고 싶은 것, 그동안 차일피일 미뤄오던 것 등을 공부하고 실천하고 싶었다. 이것들을 위해 퇴사한 것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이것들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내가 사는 이 우주의 원리를 모르고 지내면 되겠는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에 관한 다큐멘터리와 책을 봤다. 아, 물론 아직도 이해는 안 된다.

외국어 '성적'이 아니라 진짜 외국어 능력을 키우기 위해 넷플릭스를 자막을 껐다 켰다 하며 봤다. 책에 나온 지문이 아니라, 내가 전문가가 되고 싶은 분야의 뉴스들을 모아둔 영문 사이트의 살아있는 글들을 낑낑대며 해석했다. 외국어 능력이라면 응당, 내가 읽고싶은 자료를 수월하게 읽고 보고싶은 영화를 자막없이 편하게 보는 것 아니겠는가!

엄마와 단둘이 유럽 배낭여행을 했다. 아, 근데 다음부터는 패키지 여행을 해야겠다. 엄마가 체력적으로 힘들어하시더라. (퇴사한 지 8개월만에 한 첫 여행이었다.)

살기 위해 필요한 책들을 빌리고, 샀다. 그러니까 나의 내공을 키워줄만한 양식들. 이를테면, 감정을 채워주고 인생의 교훈을 주는 '바닥을 칠 때 건네는 농담'과 같은 책이라던가, 내가 태어나면서 저절로(?) 속하게 된 사회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국가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등의 책이라던가, 철학책, 과학책, 기술책 등 어려운 단어들로 가득 차 다 읽지도 못하는 책들에도 도전 정도는 해 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권, 빈부격차 등에 관한 책과 자료들.

이 공간은 이런 과정들을 기록하고 공유하기 위해 만들었다.

 

2019년 12월 독일 하노버

 

나의 목표와 꿈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 지 장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변호사 자격증'을 따면 '변호사'가 되는 것처럼 방법이 명료하지 않다.

그러나 나아가는 그 과정까지도 행복하고 즐겁고 보람차게 만들기로 했다. 그것이 퇴사 9개월만에, 그리고 한 달간의 여행 끝에 얻은 교훈이다.

그리고 나에게 서로의 꿈을 열렬히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동반자가 있어 무척이나 감사하다. 가만히 나의 계획을 들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5년을 우리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대격변의 시간으로 보내자. 향후 5년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시간이야."